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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호 국회의원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경기고등학교를 나와 연세대학교 경제학과에 81학번으로 입학했다. 대학시절부터 1990년대까지 사회주의 및 노동운동 활동을 했으나, 소련의 붕괴가 있던 1990년대 초 우익으로 전향한 이후 일본 게이오기주쿠 대학으로 가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서강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 겸임교수를 지냈다.

전향 전까지는 인천지역 민주 노동자 연맹, 한국 사회주의 노동당 창당 준비위원회 울산지역 책임자, 진보정당 추진위 등에서 노회찬 등과 함께 활동하기도 했다. 전향 후에는 경실련, 일본 케이단렌 21세기 정책연구소, 조지 워싱턴대 시거센터, 삼성경제연구소, KDI 등에서 근무했다.[2]


활동내역

2008년 8월 5일 촛불집회에 참여한 시민단체들에게 지원한 정부 보조금을 회수하자고 주장을 했다. 
이를 위해 2008년 7월 24일 국법질서 문란 단체에 대한 보조금 지원을 제한·환수하는 내용의 '비영리 민간단체 지원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했다.[4] 

2008년 10월 13일 국정감사에서 유모차부대 카페 운영자에게 분유나 과자 등에 대한 멜라민 파동 때는 왜 유모차를 끌고 나오지 않았냐고 추궁했다. 
이에 대해 국회의원으로서의 직무에 대한 책무성이 낮고 보수라는 이념 편향성 입장에서 표면적 논리의 논박에서 오는 정서적 이득에 주력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이는 국회의원으로서의 책무성뿐만 아니라 사안의 중대성에 대한 인식을 잘못된 비틀기로 호도한다는 비판이 있다.[5]

2008년 10월 14일 집회나 시위에서 가면이나 마스크 등 복면 착용을 금지하는 것을 핵심 내용으로 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그러나 사회 범죄자들의 언로 노출에 있어 마스크나 모자 착용에 대해서는 말이 없고 항상 대중의 이념성에 대해 왜곡된 대처를 한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6] 

2008년 11월 18일 군의문사위 폐지 법안 발의에 대해 군의문사 유가족, 국회 신지호 의원실 항의방문했지만, "업무방해로 고소하겠다"며 면담을 거부했다. [7] 

2009년 1월 20일 용산에서 철거민 시위를 강경진압하다가 경찰 1명을 포함하여 철거민 6명이 진압도중 화재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신지호 의원은 발생한 화재사건에 대해 "무고한 시민들의 재산과 생명을 심히 위협하는 도심테러 행위"이며 "경찰 특공대의 진압은 정당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용산 참사와 관련 "철거민연합은 범죄집단", "고의적 방화", "도심테러행위" 등의 발언을 했다[8] 

2009년 5월 17일, 18일에 개최되는 `광우병 촛불 1년의 성찰과 나라 선진화 과제'라는 토론회에 앞서 "촛불은 좌파에게 약이 아닌 독이 되고 있다"고 발언했다.[9] 

2011년 6월 2일 민주당 김진표의원이 부산저축은행의 캄보디아 PF대출사업에 연루되어있다는 의혹을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제기하였다. 
이에 대해 김진표 의원은 "터무니없는 거짓말"이라고 반박하였으며,신지호 의원이 증거로 제시한 2007년 캄보디아 방문은 한국-캄보디아 친선협회 차원의 일이라고 해명하였다.[10] 
김진표 의원이 국회 윤리의원회 제소로 대응하자 [11] 신지호 의원은 6월 13일에 다시 김진표 의원이 2007년 7월 부산저축은행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진행중인 씨엠립의 신공항 공사장을 방문하였다며 의혹을 제기하였고, 이 방문의 목적과 누구를 만났는지 해명할 것을 요구했다. 
민주당은 당 차원에서 씨엠립 방문은 여야 의원이 모두 동행한 문화재 관람과 지역 부지사와의 오찬 일정 뿐이었다고 해명하고, 명백한 사실을 음해하려는 신지호 의원의 행위에 대해 민사상, 형사상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경고했다.[12] 

2011년 8월 5일, 평화방송 라디오에 출연하여 최근 3500만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네이트-싸이월드 해킹사건과 관련, “북한과 관련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13] 


http://k.daum.net/qna/item/view.html?sobid=homo&itemid=702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