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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외환위기는 박정희가 원조다



IMF 외환위기가 마치 1997년 김영삼 정권에서만 발생했다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천만에 말씀이다. 
외환위기는 기본적으로 달러가 부족하면 발생하는데, 경상수지 적자가 지속되고 경제수준에 비해 적자 규모가 커지면 필연적으로 외환위기가 발생한다. 
김영삼 정권과 박정희 정권은 집권 내내 수백억 달러 규모의 무역적자에 시달렸다는 공통점이 있고, 따라서 박정희 정권에서 여러 차례 외환위기가 있었다는 사실은 국민들이 잘 모를뿐이지 당연한 현상의 이야기이다.

 

다만 박정희 정권 시절에 발생한 외환위기 때는 김영삼 정권과는 달리 IMF 관리체제로 가지는 않았는데, 그것은 굴욕적인 한일협정을 맺고 일본에 받아온 돈 겨우 3억불(타 피해국와 견주면 족히 30억불 정도는 받아야 마땅하나, 충성혈서 쓴 천황국이고 미국에서 장면정부에 약속했던 30여 억불이 날라간 판이라 국민들 원성이무서워 그 여론을 잠 재우느라고 일본군 출신 선배들을 통해 요로에 부탁해 몇천만 불 선금 당겨쓰고 황급히 1/10로 낙찰해 받음- 현 규모로 보면 수백억 불 천황국에 양보한 셈), 월남전에 대규모의 파병을 해서 엄청난 희생을 치르고 미국에 받아온 돈 25억불(당시 총 GDP의 몇 배 규모) 중동 건설 특수 등으로 돈 잔치를 벌렸지만, 일본에 모든 것을 의존하다 보니 최대 규모의 일본외채(YS 때는 IMF사태의 최대 원인이 됨)는 차치하고서도 겨우 겨우 상황을 모면해 나갔을 뿐이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박정희 권에서 언제, 어떻게, 왜? 외환위기 상황들을 맞았었는지 자료로 살펴보자.

 

 

첫번째 외환위기는 1962년부터 시작된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위한 투자로 경상수지 적자가 누적되서 일어났다. 

1963년에는 수출이 8,600만 달러였는데 경상수지 적자는 그 배에 가까운 1억 4,300만 달러였다. 1962년부터 1965년까지 누적적자는 2억 2,400만 달러에 달했다. 
이러한 적자는 미국의 후원으로 한일 국교가 정상화되고 일본으로부터 받은 대일청구권자금 8억 달러 (무상 3억, 유상 2억, 상업차관 3억)에 의하여 넘어갔다. 이러한 자금의 규모는 우리의 수출규모가 1억 달러 전후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엄청난 규모였다.

 

 

두번째 외환위기는 제2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 (1967~1971) 기간 중 연간 4~5억 달러의 경상수지 적자가 급속하게 증가하면서 일어났으나 '월남전 특수'로 넘겼다.
1965년 '월남파병'으로 체결된 '브라운 각서'에 의하여 아시아 지역에서의 미국정부 조달은 한국에 우선 배정할 것을 약속했고, 이에 따라 현대건설은 태국 고속도로를 건설하고 한진은 월남전 군수물자를 수송하게 되어 많은 외화를 벌어들여 외환수급의 어려움은 해결되었다.
 

 

1972년 '8.3 사채동결조치'에 의하여 기업의 이자부담이 대폭 줄어듦으로써 경쟁력은 급속히 회복되어 경상수지 적자는 감소추세에 돌아섰다. 그러나 '8.3 사채동결조치'에 의하여 우리기업은 부채를 겁낼 줄 모르고 몸집을 불리는 방만하기 짝이 없는 '차입경영'과 '그룹경영'으로 치달았고, 자본을 충실히 하고 자기 사업에만 집중하던 우량기업들이 오히려 시장 경쟁에서 밀려나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 경제는 구조조정에 의하여 대외경쟁력을 강화한 것이 아니라, 사채동결이라는 편법에 의존함으로써 위기관리 능력을 상실하게 되었다.

 

 

세번째 외환위기는 1973년 10월에 발생한 제1차 오일쇼크의 영향으로 적자규모가 1974년에는 최초로 두자리 수인 20억 달러를 넘어서며 일어났다. 
미국의 씨티은행과 체이스맨해튼 은행을 중심으로 하여 당시로서는 거액이었던 2억 달러의 점보 론(jumbo loan)을 받아 가까스로 유동성위기를 넘겼다. 
우리의 건설업이 동남아에 진출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1974년 중동에 진출하여 오일 달러를 벌어들이게 되는 '중동건설 특수'에 의하여 위기를 넘겼다.

 

 

네번째 외환위기는 1979년 '10.26 사태'로 박정희 유신체제가 무너지면서 일어난 정치적 혼란과 1970년대 중화학공업 투자에 의해 1979년부터 3년 연속 40~50억 달러의 경상수지 적자가 누적되어 외환수급이 어려워졌다. 미국의 지원 아래 이루어진 40억 달러의 '한일 경제협력자금'이 보증역할을 하여 대외신용을 유지할 수 있었고 해외차입으로 외환수급의 어려움을 넘기게 되었다. 

 

1997년 외환위기 이전에 이와같은 네번의 외환위기가 있었지만 자기자본을 충실히 하고 뼈를 깍은 구조조정의 노력보다 냉전체제의 산물인 한미일 특수관계, 월남전 특수, 중동건설 특수라는 외생적 변수에 의존하여 위기를 넘김으로써 위기불감증에 걸리게 되었다.

 

 

1994년부터 1996년까지 3년동안 372억 달러에 가까운 경상수지 적자가 늘어나는 데도 원화를 절상하는 방향 착오에 의해 위기는 가속되었다.
1997년에 와서야 금융감독 체제를 개편하고 '부실채권 정리기금'을 조성하여 구조조정을 시작했다. 떨어진 대외신인도를 높이려는 노력이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동남아에 몰아닥친 외환위기를 자력으로 극복하지 못하고 'IMF 긴급자금지원' 이라는 타력에 의하여 위기를 넘겼다. 구조조정을 위한 개혁조치들은 IMF 자금지원이 있은 후에 IMF 경제프로그램에 의하여 입법화되었다.

 

 

냉전체제도 사라지고 중국이 시장경제에 편입됨으로써 한미일 특수관계도 약화되었고, 월남전 특수나 중동건설 특수 같은 것도 기대할 수 없었다. 
박정희 정권의 '8.3 사채동결조치' 같은 특혜조치도 불가능했다. 기업 스스로의 자력에 의한 자본충실과 경쟁력 강화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고, 정부는 강력한 리더십으로 구조조정을 꾸준히 추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참고자료 - 현장에서 본 한국경제 30년)

 

 

 

 

박정희 정권의 무역수지 적자규모의 기하급수적 확대 현황

 

 

 

 

 

노무현보다 못한 박정희 경제 [1]
정일창(jj77)  [2011-01-20 13:39:28]
조회 219  |    찬성 10  |    반대 27  |  스크랩 0
  

 

역대정권의 경제성장률과 물가상승률 (단위: %)  

 

 

박정희

(63-79)

전두환

(81-87)

노태우

(88-92)

김영삼

(93-97)

김대중

(98-02)

노무현

(03-07)

경제성장률

9.1

8.7

8.36

7.1

4.38

4.42

물가상승률

16.5

6.09

7.38

4.98

3.50

2.92

비율

0.55

1.42

1.13

1.42

1.25

1.51

 

(비율: 경제성장률/물가상승률, 일반적으로 높을수록 좋다.)

 

 

 

 

 

 

<표 1> 역대 정권의 부동산 성적표  (단위: 조)

 

▲ ⓒ프레시안 

 

 

 

아시아 주요국과의 성장률 비교 분석 

 

 

 

박정희 정권 시절 평균 경제성장률이 9%로 고도성장을 이룩했다고 하나 60~70년대에는 일본 대만 중국 싱가포르 등 상당수의 동아시아 국가가 이와 비슷한 수준의 고도성장을 했던 시기였고, 박정희 경제 이면에는 물가폭등 1위, 부동산값 폭등 1위, 수백억불의 무역적자, 여러 차례의 외환위기 등의 부정적인 면이 존재한다.
다만 보수 언론과 그 지지세력들이 박정희 경제의 여러가지 어두운 면은 숨기고 오직 고도성장을 했다는 것만을 홍보하며 박정희 경제를 찬양하고 업적 부풀리기에 앞장서 왔다.
 

 

보수 수구언론이 경제파탄을 외쳤던 노무현 정부에서는 5년 연속 무역수지 흑자를 바탕으로 660억불에 달하는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해 2600억불의 사상 최대의 외환보유고를 이명박 정부에게 넘겨주었지만, 박정희 정권은 집권 내내 무역적자에 시달려 여러차례 외환위기를 맞았다. 박정희 정권 18년동안 누적 무역적자의 규모는 250억불에 달했으니 무역적자 역대 1위가 박정희 정권이다.  

 

박정희 정권은 이런 엄청난 무역적자와 외환위기를 일본과 굴욕적인 한일협정을 맺어 받아온 돈, 월남전에 대규모로 파병해서 엄청난 피를 흘리고 받아온 돈, 미소 냉전체제의 특수상황속에서의 미국 지원, 중동 건설 특수 등의 덕분으로 겨우 모면했을 뿐이다.

 

또한 노무현 정부에서는 역대 정권중 가장 물가가 안정되 있었지만 반면에 박정희 정권에서는 연평균 16% 이상의 엄청난 물가폭등과 집권기간 중 무려 100배에 달하는 부동산값 폭등으로 국민들이 고통받았다. 

 

박정희를 찬양하는 주된 이유가 경제인데, 이와같이 단순히 경제 문제로 한정해서 따져봐도 박정희를 극구 찬양하는 것은 정보 왜곡을 통한 일종의 우상화 작업에 불과하다. 경제를 제외하면 박정희는 폭력으로 국민을 지배했던 독재자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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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경제의 실상을 비판적으로 보여 주는 동영상 

http://www.youtube.com/watch?gl=KR&hl=ko&v=qetnoqBR7z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