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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의용군 " 아버지의 나라 " KBS 파노라마








일제 강제징용으로 이주당한 한국인들의 2세들

일본에서의 엄청난 차별과 핍박에도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여 가정을 이루고

일본 유수의 명문대학생들로 미래가 보장된 젊은 청년들이

본적도 기억에도 없는 아버지의 고국 한국에서 발발한 전쟁에 참전하기 위해

642명의 젊은 청년들이 가족들과 헤어져 미군들과 함께 일본을 떠나오게 됩니다.









일본에서 나고 자란 이들이니 한국말을 할수 있을리도 없었고

일본어만 하다보니 한국인으로부터 일본군으로 오해를 받기도하고

전투훈련도 겨우 4일만 받았던 신병이기에

전투에서도 많은 희생을 당합니다.

642명중에 132명이 차디찬 한국땅에서 전사







1952년 4월 이전에 제대하여 일본으로 돌아온 재일동포 2세들과 달리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으로 일본이 주권을 회복하게 되면서

한국전쟁이 끝나고 제대하여 뒤늦게 일본으로 귀국을 하려던 참전 청년들은 일본으로 부터 입국을 금지 당하게 됩니다.

심지어 한국에서도 한국말도 못하는 일본인들을 받아줄리 없었고

임시로 마련한 거처로 부산의 한 절에서 일본의 가족품으로 돌아갈 날을 기다리게 되고

일본에 남아있는 가족들도 정부에 청원했지만 아무 소용없었고

결국 평생을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수 없게 되버립니다.







샌프란시스코 조약이후 한국 과 일본의 외교정상화도 되지 않아

일본으로 편지를 보낼수도 받을수도 없게되고, 결국 가족과의 연락도 끊겨 생이별을 하게 됩니다.

샌프란시스코 조약 이전에 제대한 참전청년들도 일본내 조총련 세력들과의 갈등으로 힘든 삶을 보내게 됩니다.








아버지의 조국인 한국전쟁에 참전하여 받는 보훈연금도

한국인들의 세금으로 주는 연금을 일본에서 쓸수 없다며 한국의 한 고아원에 전액 기부

자신의 몸 역시 아버지의 조국인 한국의 거름이라도 되고자

자신의 묘 역시 한국에 만들어달라고 자식들에게 부탁







가족들 역시 그런 아버지를 존경하고 사랑하며

자신들 역시 한국인의 피를 받았다는것을 자랑스러워합니다.








한국전쟁에 자발적으로 참전한 일본내 재일동포2세 642명중

245명은 일본의 주권 회복뒤 입국 금지조치로 인해 일본의 가족품으로 돌아가지 못하였고

132명은 아버지의 조국 한국에서 전사하였고

265명만이 일본의 가족품으로 돌아올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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