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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아더의 미국이 일왕면책으로 우경화의 기반을 제공





제2차 세계대전 3대 전범국가 지도자 중 히틀러 독일 총통은 자살했고 무솔리니 이탈리아 총리는 반(反)파시스트 유격대원에게 살해됐다. 유일하게 히로히토 일왕만 처벌을 면했다. 그 이면에는 미일(美日) 간의 거래가 숨어있다. 전후 처리 과정에서 더글러스 맥아더 연합군사령관은 점령 통치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히로히토 일왕의 전쟁 책임을 맞바꿨다.


1945년 6월 초 갤럽의 비공개 여론조사에서 미국인의 77%는 일왕에 대한 엄중 처벌을 요구했다. 맥아더와 히로히토 일왕의 회담 직전인 1945년 9월 18일에는 일왕을 기소해야 한다는 합동결의안 94호가 미 상원에 제출됐다. 하지만 맥아더 장군의 생각은 달랐다. 일왕과 히가시쿠니노미야 내각은 맥아더가 도쿄에 도착하기 전 700만 명의 육해군을 무장해제했다. 맥아더는 일왕에 대한 국민의 충성심을 역이용하면 점령정책이 수월해지고 일본을 개조할 수 있다고 믿게 됐다.


이런 과정을 거쳐 일왕이 '상징 천황'으로 살아남고 냉전 기류에 편승해 군국주의 지도부도 대거 살아나 복권됐다. 이들과 후손이 그대로 일본 정계를 주도하면서 군국주의 역사를 정당화하고 있다. 아베 총리의 외할아버지도 만주국(1931년 만주사변 이후 일본이 만주 일대에 세운 괴뢰국가) 고관을 지내고 전범으로 기소됐던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전 총리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나치 범죄에 대해 독일은 세대를 이어 영원히 책임이 있다"고 했다. 전후 일왕의 전쟁 책임을 묻지 못한 채 우경화의 길로 들어선 일본의 역주행과 뚜렷이 대비되는 대목이다.



http://media.daum.net/foreign/others/newsview?newsid=20130518030509849&RIGHT_COMM=R10



우리나라도 이승만 정권이 친일파 청산을 제대로 하지못해


그 후손과 잔당들이  미군정에서 살아남고    일본 미국에 이어 독재권력에도 아첨하고 기생해서

지금까지 떵떵거리며 한국의 상류특권층을 형성해  민주화를 막고 그 권력을 유지중이다.